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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호진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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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X파일과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 등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사이에 한때 그 못지않은 관심과 우려를 자아냈던 KBS 사태가 조용히 마무리됐다. 노조위원장의 목숨을 건 단식과 경영진의 결연한 자세 속에서 일촉즉발의 대치상태가 유지되던 KBS의 노사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됐다는 점에서 일단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토록 치열했던 투쟁의 결과물이 ‘신의성실의 정신에 따라 상호협력한다’라는 합의문구로 대표된다면, 도대체 KBS 노조는 무엇을 위해 장장 2개월 동안 사측과 대립각을 세워왔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일각에서 임금보전이나 고용보장에 대한 이면합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유도 공식적인 합의안으로는 그동안 경영진 퇴진을 부르짖었던 노조의 갑작스런 입장선회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KBS와 MBC 양대 공영방송의 노조는 방송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빛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신문사 노조가 사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경영 악화에 따른 자사 이기주의에 빠져있을 때에도, 공영방송 노조는 대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 공정보도를 위해 직언을 서슴치 않는 용기를 보여 왔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인 법.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비주류 세력이 정권을 획득하는 사회적 변화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혁명적인 디지털 매체 환경의 도래 속에서, KBS 노조가 지금까지 보여준 구태의연한 투쟁방식과 강경일변도의 기세싸움은 공영방송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실망과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정치사회적 민주화가 가져다 준 가장 큰 변화는 노조와 시민단체 등 그동안 사회적 약자 내지 소수자였던 단체들의 위상과 영향력을 고양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물론 여기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바로 이 점에서 KBS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 하나는 아무리 의욕이 넘치는 수장이 오더라도 경영진과 사사건건 의견을 달리하는 노조, 경영진 퇴진이 지상과제인 노조가 카운터파트너가 될 경우, 이내 극심한 노사갈등에 휩싸이게 되고 제대로 된 경영전략을 실행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지난 시절 이른바 조중동을 ‘조폭언론’이라 비판하며 진정한 기자정신의 회복을 설파했던 KBS의 정연주 사장이 자사 노조집행부에게 무능한 신자유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이러한 대립구도가 조중동의 지면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역시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그동안 KBS 노조가 보수신문들을 상대로 벌인 언론플레이에 대해서는 구태여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 언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성찰한다면 그리고 KBS 노조가 지닌 사회적인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보다 신중한 언행과 사려 깊은 평가가 아쉬울 뿐이다.
본질적으로 이번 KBS 사태는 사회 변화와 개혁 마인드에 부응하는 노사모델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노조원 생존권 보호라는 기본적인 임무 이외에도 우리 사회가 KBS 노조에게 바라는 사회적 역할과 희생정신에 대해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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