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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국한 재미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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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파동 이후 일부 신문과 방송이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그동안의 관련 보도에 대해 자성했다.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의 최종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서둘러 반성문을 쓴 언론도 있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특별히 여론 오도에 큰 몫을 한 주류 언론가운데는 원론적인 수준의 비판론을 제기하거나 아예 별다른 언급 없이 넘어간 경우도 있었다. 각 사의 자성 내용이 어떤 것이든 간에 대부분 언론은 이번 파동을 계기로 또 한 차례 국민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황우석 사태에 책임 큰 언론이란 제목의 한국일보 사설은 이번 파동에서 드러난 우리 언론의 문제점을 잘 정리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설은 경마식 보도와 네티즌의 반응에 편승한 선정적 보도, 국가주의와 이념을 내세운 편가르기식 논평, 전문성 부족에 기인한 추측성 보도 등을 황우석 관련 보도의 문제점으로 꼽으면서 `한국의 언론은 이번 사태를 통해 또 다른 치부를 드러냈다고 밝혔다.
올바른 지적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과연 언론이 앞으로 달라질 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의구심이 든다. 우리 언론은 그동안 늘 남에 대해 입바른 말은 수없이 해대면서도 정작 자신의 고질적인 결함은 무엇 하나 제대로 바로잡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론 오도에 앞장섰던 주류 신문들의 태도를 보면 의구심은 더욱 커진다.
나는 사설이나 칼럼 한 편으로 언론의 전반적인 보도 행태를 비판하면서 함께 자성하자고 하는 식의 두루뭉실한 반성에서 진정성을 보지 못한다. 제대로 된 반성이라면 보도의 전 과정에서 언론의 기본상식이 적용되지 않고 한 쪽으로만 치닫게 만든 사내 요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같은 행태와 그에 따른 기사작성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등을 가려낸 뒤 이를 독자들에게 낱낱이 고해야 한다. 편집 책임자에 대한 문책도 이뤄져야 한다. 이런 정도의 자기반성이 없다면 또다시 큰 사안에 부딪혔을 때 경마식 보도에 편가르기식 논평, 여론에 편승한 선정적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믿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제이슨 블레어 파문’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조처를 떠올리고자 한다. 이 신문은 지난 2003년 자사 소속 블레어 기자가 기사 속에 취재원이 하지도 않은 말을 꾸며내고 다른 기사를 표절한 일이 드러나자 회사 안팎의 전문가 20여명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사 결과는 1면 머릿기사 등 무려 4개 면을 털어 자세하게 뉴욕타임스 지면에 발표됐고, 제이슨 기자 외에 편집인과 편집국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따지고 보면 우리 언론에 제이슨 블레어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지 모른다. 조작과 표절은 그렇다 해도 취재원의 말을 앞뒤 맥락을 거두절미해 사실상 전체적인 발언 내용이나 의도를 왜곡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최근 광부 12명이 사망한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탄광사고에서 미국 언론들은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이들이 모두 생존했다는 오보를 냈다. 언론들은 구조 관계자들의 말을 전한 것이니 잘못이 없다는 분위기지만 사실확인을 소홀히 하고 희생자 가족들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한 데 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본다.
마침 기자협회보에서 국제신문의 젊은 기자가 과로로 순직했다는 안타까운 기사를 보았다. 지난해에도 여러 기자가 과로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오늘도 많은 기자들이 소명의식을 갖고 갈수록 어려워지는 언론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황우석 파동은 언론이 냉정한 사실보도에서 멀어지면 어떤 노력도 빛을 발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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