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기자들 "용산만 바라본 박장범 앵커, 사장 자격없다"

KBS 기협 이어 37·38·45·46·47·50기 기자들 '사퇴 요구' 성명

“우리는 KBS 기자가 아니라, ‘용산방송 기자’라는 비판을 들으며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 물러나십시오. 후배로서, 직원으로서, 공영방송인으로서 간곡히 부탁드린다.”

박장범 뉴스9 앵커가 KBS 신임 사장 최종 후보로 선임되자 KBS 기자들의 반대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24일 KBS 기자협회 성명을 시작으로 10년 차 이하 주니어인 45기, 50기 KBS 기자들은 차례로 기명 성명을 내어 ‘조그만 파우치 발언’, ‘취재 기자가 납득할 수 없는 앵커 멘트 수정’ 등 박장범 사장 최종 후보의 ‘뉴스9’ 앵커 활동 당시 “그저 용산만 바라본” 행적들을 열거하며 그가 사장 자격이 없다고 성토했다. 이어 37기·38기·46기·47기 기자들의 박장범 사장 후보 사퇴 요구 성명도 사내에 게재됐다.

박장범 KBS 사장 후보가 2월7일 진행한 윤석열 대통령 대담 방송 화면.

KBS 기자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박 후보가 2월 진행한 윤석열 대통령 대담 중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의혹’ 질문에 대해 “고가의 명품백을 ‘이른바 파우치’라고 조심스레 돌려 말하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며 “결국 국민이 알고 싶고 듣고 싶은 것 대신 대통령이 말하고 싶은 것만 물어봤던 그날의 대담이 사장 후보자 제청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KBS 사장은 KBS 이사회의 임명제청에 이어 대통령의 임명재가를 거쳐 최종 임명된다.

KBS 기자협회는 “기자들이 분노한 건 파우치냐, 백이냐가 아니다. 핵심은 일반 국민이 쉽게 사기 힘든 고가의 제품이라는 사실을 파우치라는 표현 뒤에 감추고 왜곡했다는 점”이라며 “앞으로 박장범 앵커가 사장으로 취임한다면 그 이름 앞에는 영원히 ‘파우치’라는 단어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어떤 뉴스를 만들어도, 어떤 프로그램을 방송해도 용산과의 관계가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닐 것”이라고 우려했다.

KBS 45기·50기 기자들은 박 후보가 뉴스9 앵커로 지낸 지난 11개월여 동안 취재 현장에서 느낀 자괴감, 부끄러움을 토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월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 를 녹화하며 '2023년 4월 미국 국빈 방문시 백악관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물했던 빈티지 야구 물품 액자를 소개하고 있다. /뉴시스

KBS 50기 기자 25명은 성명에서 “‘KBS를 어떻게 믿고 자료를 주냐’, ‘KBS에서 이런 주제는 못 다루지 않냐’고 묻는 수많은 취재원에게 우리는 ‘보도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답할 수 없었다”며 “질문은 기자의 역량을 드러낸다고 배웠는데, 대통령 신년 대담에서 박장범 앵커가 던진 질문은 함량 미달이었다. 기사보다 공들여 쓰라고 배운 앵커 멘트는, 취재기자가 납득할 수 없는 문장으로 바뀌곤 했다”고 전했다.

또 기자들은 박 후보를 향해 “지난 1년간 KBS 뉴스는 공정했나. 현직 앵커인 당신이 사장직에 지원하면서, 현장 기자들이 땀 흘려 취재한 결과물을 전달하는 ‘뉴스9 앵커직’이 ‘사장 지망생’ 자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고 물었다. 이어 “박 후보는 경영계획서에 ‘데스크 기능을 강화하여 중립성을 훼손할 경우 엄격한 문책을 실시하겠다’고 적었다”며 “우리에게는 이 말이, 사장이 되면 지금보다 더 용산 입맛에 맞는 보도만 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고 우려했다.

KBS 45기 기자 43명도 성명을 내어 “1년이 지난 지금, 살아있는 권력에 눈 감은 뉴스, 구성원들마저 공감하지 못하는 뉴스는 현장 기자들에게 매일 자괴감을 안긴다”며 “박 후보자의 사장 후보자 지명으로, KBS의 신뢰도는 또 한 번 곤두박질쳤다. 아무리 피땀 흘려 취재해도, 이제 시청자들은 이를 용산을 겨냥해 보낸 메시지로 읽는 지경이다.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45기 기자들은 “정파적 고려 대신, 시청자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그저 용산만 바라보는 후보자는 그야말로 자격 미달”이라며 “우리는 박 후보자를 인정할 수 없다. 이제 더는 지켜보지만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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